상담전화

02-9500-114

평일 오전 9:00 ~ 오후 6:00
토, 일요일, 공휴일은 휴관입니다.


온라인문의

부유물질

김민식

2024-12-29 오후 4:42:09

부유물질이 떠다니는 검은 하천이 한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90㎞ 떨어진 파니파트시 남부의 심라구지란 마을.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크리산 랄 샤르마(75)는 이 하천과 3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산다. 2024년 10월23일 한겨레21 취재팀이 찾아갔을 때 샤르마는 집 1층에 설치한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플라스틱 지팡이를 짚으며 힘겹게 침대에 걸터앉은 뒤 천천히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넸다. 샤르마는 마비 증세로 다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했고, 종아리 쪽 피부는 알레르기성 피부병으로 우둘투둘했다. 그는 입을 떼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상태로 14년째 혈액암 투병 중이라고 말했다.


피부병과 함께 마비 증상 찾아온 샤르마

마을의 이장을 맡기도 했던 샤르마는 평생 심라구지란에서 농부로 살았다. 건강했던 그의 몸 상태가 이상해진 건 2010년께부터다. 농부로 일하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다리에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고 한다. 도시에 있는 대형병원에 갔지만, 마비 증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통원치료를 하다가 암 진단을 받게 됐다.


심라구지란 마을의 하천 인근에 사는 크리산 랄 샤르마(75). 그는 헌 옷 표백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가 마을로 흘러들어 혈액암에 걸렸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심라구지란 마을의 하천 인근에 사는 크리산 랄 샤르마(75). 그는 헌 옷 표백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가 마을로 흘러들어 혈액암에 걸렸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법과 병의 원인을 함께 물색했다. 그러다 한 의사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오염된 땅에서 자란 작물을 먹은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샤르마는 자신의 마비 증상이 피부병과 함께 왔던 상황을 떠올리게 됐다. 집 근처 하천이 폐수로 더러워진 시기 역시 발병 시기와 겹쳤다. 심라구지란의 샤르마 집 인근을 흐르는 하천에는 ‘헌 옷의 수도’ 파니파트에서 연간 10만t의 섬유를 재활용하는 표백·염색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가 고스란히 흐른다. 마을이 공장 단지보다 8㎞가량 하류에 있기 때문이다. 심라구지란의 하천이 눈에 띄게 검고 탁해진 건 2010년 초다. 샤르마는 느린 속도로 어눌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어릴 때 이 마을을 기억해보면, 사람들은 강에서 목욕하고 빨래도 했어요. 그런데 2010년 이후 갑자기 2년 만에 물이 더러워졌어요. 사람들은 물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도 가만있지만은 않았다. 하천 물을 그대로 길어서 쓰던 사람들은 오염수로 물이 더러워지자 200m 아래로 땅을 파서 지하수를 길어내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염 물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샤르마는 20㎞ 거리의 병원에 다니며 한 달에 치료비와 약값으로만 1만3천루피(한화 21만6천원)를 쓴다. 파니파트시 1인당 월평균 소득이 1만7568루피(29만2천원)인 것을 고려하면, 그의 가족 한 달 소득의 상당 부분이 치비에 들어가는 셈이다. 샤르마와 비슷하게 ‘더러운 물’로 인해 마비 증세나 암을 겪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이 마을은 농가라 소득이 낮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아프면서 부담해야 할 최소한의 의료비는 높아진 거죠. 물 오염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는 거예요.” 샤르마를 간병하는 아들 비제이 팔 샤르마(42)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천 상류에선 하루에 수십t 잿빛 폐수 버려

그렇다면 상류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취재팀은 심라구지란 하천으로 오염된 폐수가 흘러 들어오는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상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2㎞ 정도 올라가보니 하천 주변 도로가 검은색 혹은 적갈색으로 오염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은 하천의 ‘2번 배수구’로 불리는 곳인데, 섬유를 재활용하는 표백·염색 공장이 업자한테 폐수를 주면 업자가 트럭으로 폐수를 싣고 와서 이 배수구에 갖다 버린다.


인도 파니파트 표백 공장에서 나온 폐수가 하천에 불법으로 방류되고 있다. 공장들은 폐수처리업자에게 돈을 주고 폐수를 방류해 이 하천은 심라구지란 마을과 야무나강으로 흐른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회원의견 (0)